전국 오피스텔 13곳서 ‘보증금 먹튀’로 97억 ‘꿀꺽’
입력 : 2023-12-10 15:37:56 수정 : 2023-12-10 19:18:48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부산지법 임대관리업체 대표 첫 공판“324회 걸쳐 97억 400만 원 횡령”방청석 꽉 채운 피해자 억울함 ‘호소’
부산법원 종합청사 전경
전국 곳곳에서 오피스텔을 운영하다 100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횡령한 임대관리업체 대표(부산일보 지난 8월 14일 자 1면 등 보도)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전국에서 피해 금액이 가장 큰 부산 지역 피해자 수십 명이 이날 재판장을 꽉 채워 피해를 호소했다.
부산지법 형사10단독 김병진 판사는 지난 7일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30대 A 씨에 대한 첫 번째 공판을 열었다. 검찰이 밝힌 공소사실에 따르면, A 씨는 2021년 1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전국 13개 오피스텔 수분양자에게 임대차 계약 전반에 관한 업무를 관리해 주고 최대 10년까지 월세를 보장한다며 총 324회의 계약을 체결해 보증금 97억 4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2021년 1월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한 오피스텔의 수분양자 B 씨에게 오피스텔 임대 계약 전반에 관한 업무를 관리해 주겠다고 접근했다. 공실 여부와 상관없이 최대 10년까지 월세 임대 수익을 보장해 주겠다고 설득했다.
A 씨는 “임대인에게 보증금 1600만 원에 매달 월세 55만 원을 지급하고, 임차인에게는 보증금 40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을 받겠다”며 임대차 계약 만기 시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 역시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B 씨를 속였다.
하지만 A 씨는 임차인으로부터 받는 월세보다 더 많은 월세를 임대인에게 지급해 줘야 하고, 임차인에 대한 보증보험 등 각종 부담까지 져야 하는 상황으로 제대로 된 수익 사업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A 씨는 오피스텔 임대관리 사업장을 추가로 발굴해 인수인을 모집하고 임대차 보증금을 대신 수령하는 일명 ‘돌려막기’를 지속하다 돈이 부족해지자 결국 잠적했다.
검찰은 “A 씨는 오피스텔 임대 관리 사업장을 추가로 발굴해 더 많은 인수인을 모집하고 임대차 보증금을 대신 수령하는 ‘돌려막기’ 외에는 사업을 지속할 수 없어 피해자에게 약속한 내용을 이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장에는 피해자 수십 명이 방청석을 꽉 채웠다. 한 피해자는 재판 도중에 손을 들어 재판부에 발언 기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재판 말미에 발언 기회를 얻은 이 피해자는 “피해 이후 지난 6월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그럼에도 A 씨가 수많은 피해자에게 조금의 성의도 보여주지 않고 있어 재판부의 엄중한 법의 심판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A 씨의 범행은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한 오피스텔에서만 160여 세대가 피해를 보아 피해 금액은 6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지난 8월 피해자들이 동래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A 씨가 운영한 사업장은 서울, 인천, 광주 등 전국에 있는 만큼 피해 금액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A 씨의 임대관리 사기를 규탄’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공판이 마친 후 또 다른 피해자는 취재진에게 “전세사기는 보통 임차인이 피해자인데, 이번 사건은 특이하게 임대인을 상대로 한 새로운 형태의 사기 수법”이라면서 “이들이 주장한 원룸형 수익률은 연 4% 정도 수준으로 통상적인 임대사업 수익률보다 낮은데, 오히려 편하기 위해 임대관리업체를 사용하다 큰 피해를 입게 됐다”고 호소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