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보험사기 혐의 피의자 다니던 병원 압색
압색 전 집행 일시 및 장소 등 사전 통지 안해
진정인 “적법절차 위반 인권침해”…인권위 진정
경찰 “통지했으면 병원에 접촉해 증거인멸 우려”
인권위 “진료기록부 등은 의료법 따라 엄격 보존”
“임의로 훼손·멸실 우려 크다고 보기는 어려워”
[서울=뉴시스]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 집행 일시 및 장소 등을 사전에 통지하지 않는 등 압수수색 과정에서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사진은 인권위. 2024.04.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광온 기자 =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 집행 일시 및 장소 등을 사전에 통지하지 않는 등 압수수색 과정에서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달 18일 한 경찰서장에게 압수수색 과정에서 피의자들의 참여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적법절차와 관련된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4일 밝혔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지난 2022년 6월께 한 보험회사가 진정인 A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후 같은 해 7월 사건 담당 경찰관인 피진정인 B씨는 A씨의 입원 관련 진료기록부 등을 확보하기 위해 A씨가 진료받은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이를 통해 A씨의 진료기록부, 방사선 자료, 물리치료 대장, 급식 대장, 입원환자 관리대장, 외출 및 외박기록부, 입·퇴원확인서 등의 자료를 압수했다.
통상 보험사기 사건은 입원 관련 진료기록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송부해 입원 적정성 평가 의견을 참고하면서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B씨는 압수수색 전 A씨에게 집행 일시 및 장소 등을 사전에 통지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A씨는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참여하지 못했다.
A씨는 “이는 적법절차를 위반한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아울러 A씨 외에도 그와 유사한 사례를 겪은 다른 피의자들도 같은 사유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피진정인 B씨는 “압수수색영장 집행 사실을 진정인에게 미리 통지할 경우 병원 관계자를 사전에 접촉할 수 있고, 그런 접촉을 통해 병원 진료기록부 등을 인멸하거나 훼손해 압수수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답변했다.
형사소송법 제121조 및 122조는 압수수색영장 집행 전 미리 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피의자나 변호인에게 통지해야 하나 ‘급속을 요하는 때’에는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B씨는 A씨의 경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해당 병원 압수수색을 ‘급속을 요하는 때’로 보고 영장 집행 일시 및 장소 등을 사전에 통지하지 않았다고 항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영장 집행에 대한 당사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고, 당사자에게 영장을 집행할 일시 및 장소를 미리 통지하지 않은 점 등은 헌법 제12조에서 보장하는 적법절차의 원리를 위반한 인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는 “진정인들이 주장하는 예외 사유는 영장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사법 체계에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진료기록부 등은 의료법에 따라 엄격하게 기록하고 보존하도록 하는 자료들로, 이런 진료기록부 등을 훼손하고 인멸할 경우 위반자에 대한 벌칙 규정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점 등을 볼 때, 진정인에게 미리 영장 집행의 일시 및 장소를 통지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기록들을 임의로 훼손하거나 멸실할 우려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다”며 “이런 피진정인들의 행위는 헌법 제12조에서 보장하는 적법절차의 원리를 위반해 진정인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후 인권위는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B씨가 속한 경찰서 서장 등에게 수사관들을 대상으로 관련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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